여장

[여장소설 57] 부모님에게 여장 도구들이 발각 되고

미국 케네디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새벽에 출발했다.
뭐 원래 그렇게 일찍 가는 건지…
하루에 한 번만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은 새벽같이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처음 타보는데 길이 아주 좋았다.
그때의 기분은 왠지 섭섭하기도 하고 글쎄…
나는 나쁜 남자인가 보다.
아무튼, 작년 여름에 은채한테 문자 하나가 왔는데…아차 싶었다.
부모님에게 여장 도구들이 발각 되어 난리가 났었나 보다.
순진해서 잘 둘러대지도 못했는 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까지 모두 들켰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내 연애 파트너가 큰 일이 났다고 보낸 문자를 보며 오히려 내 걱정이 되는 거였다.
‘분명 사진에 나도 나왔을 텐데 어쩌지?’
‘혹시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럼 나 X 됐네’
‘전화해서 내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할까?’
‘아 씨팔 조심 좀 하지…아놔~!’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며 혼자 생쇼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내 걱정은 하지 마여 ^^; 형 얘기는 절대 안 할 거니까 안심하고요. 그리고 이 핸드폰은 버릴 거니까 앞으로 전화 안 될 거예요. 나중에 전화할게요.ㅠㅠ”
헉! 나는 정말 나쁜 남자다.
솔직히 일정 기간 육체적으로는 마누라보다 은채를 더 사랑해놓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 자신이 미웠다.
그리고 깊이 반성하며 마음속으로 ‘은채야 미안하다’를 수도 없이 되내었다.
만약에 ‘내 얘기하면 안 돼!’ 뭐 이런 문자를 보내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 했을까? 휴~ 다행이다. 다행.’
그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나 은채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열 일을 제쳐놓고 나갔다.
부모님이 2학기부터 휴학하고 미국에 있는 작은집으로 가라고 했단다.
거기서 공부하다가 미국대학에 편입해서 어쩌고저쩌고…
“언제쯤 떠나니?”
“한 달 정도 준비하구…”
“……….”
한동안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야?”
“아녜요… 돌아오죠.”
“얼마나 있다 올 건데?”
“…….비자때문에 1년에 한두 번은 나왔다 들어가니깐….”
“몇 년이나 공부할 건데?”
“모르겠어요…..일단 해봐야 아는 거니까”
“미국 어디로 가는데?”
“필라델피아요…. 왜요? 미국에 아는 분 계세요? 오실 일 있으세요?”
“………없지.”
“…………”
그날 나는 술을 진탕 먹었다.
은채는 모텔에 가자고 그러는데…
그냥 억지로 집에 보냈다.
그 후에 한 번 모텔에 가서 마지막 밤을 보내긴 했는데…
업도구가 없어서…그냥 동성애를…쩝.
사실 레즈플이나 뭐나 따지고 보면 다 동성앤데…
그래도 업을 안 하면 좀…그래요…그쵸?
공항에 나간다고 하니까…오지 말라고 괴로울 거 같다고 했다.
그래도 무조건 간다고 했다.
내가 공항을 몇 번 가 봐서 대충 알기에 출국장 왼쪽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레스토랑도 있고 커피숍도 있으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볼 일 다 보고 시간 내서 오라고 미리 약속을 했다.
그 와중에도 커피를 마시면서, 은채를 기다리면서,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는 데 여자의 각선미를 보고 있는 나라는 놈은 도대체…쩝.
한참 후에 “형 정말 오셨네요?” 하는 기쁨에 찬 은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려면 얼마나 남았니?”
“얼마 안 남았어요. 이것저것 할 게 많네요.”
나는 벌떡 일어서며 은채의 손목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소변보는 사람이 없었고 맨 마지막 칸으로 들어갔다.
나는 챙겨온 가그린으로 가글을 하고 은채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공항 화장실은 문이 조금 짜증 나게 생겼다.
문 높이도 낮고 밑에도 틈이 높아서 서 있으면 머리가 보이고 밑을 보면 틈이 있어서 좌변기에 앉은 사람 발이 보일 정도였다.
내가 먼저 좌변기에 앉고 은채를 마주 안아 내 위에 앉게 했다.
그리고 아주 진한 마지막 키스를 나눴다.
그리고 최대한 오래 기억에 남게 하려고 굉장히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서로가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헤어진 후 6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전화 2통이 왔다.
은채는 비교적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은채가 떠난 뒤 한동안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괜찮아졌다.
‘아~ 짜식 업 용품이나 좀 주고 가지. 그 아까운 걸 다 뻈겼는지…젠장!’
나는 나쁜 남자다. 확실히!
이제 봄이 오면 또 슬슬 인라인 시즌이 시작되면서 새내기들이 동호회를 찾겠지.
혹시 은채같이 사랑스러운 애인할만한 놈이 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또 야릇한 상상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제 성향은 과연 뭘까요?
전 아직도 제 성향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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