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소설 17] 여보! 나 오늘 여장남자 봤어.

투표일이다.
쉬는 날이어서 어젯밤 늦게까지 집 주변과 공원을 돌아다녔다.
물론 여장한 채로.
내 여장 컨셉은 언제나 미니스커트.
바람이 제법 불어 치마 안이 무척 상쾌했다.
아마 많은 여장남자가 지금 내가 말하는 이 치마 속 느낌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을, 바람이 태우는 간지러움을…
새벽 2시까지 그렇게 나는 여자의 모습으로 한적한 거리와 공원과 주택가 골목길을 하염없이 거닐며 치마 속 바람을 즐겼다.
단지 걷는 것뿐인데도, 그것만으로 마냥 행복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장을 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어제 그 모습 그대로 투표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한 화장과 새로 산 옷이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굉장한 모험이겠지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
분명 내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할 것이고 일이 잘 못되면 큰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
만약 용기가 대단하다면
“저, 여장남자예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하겠지만…
“어머! 저 사람 여장남자래.”라고 떠드는 소리를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상상만 해본다.
내가 여장남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기표소 안에 들어가 투표하는 모습.
참관인 중 유독 여성이 많았던 그곳.
종일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여보. 나 오늘 투표소에서 여장남자 봤어. 근데 정말 예쁘더라. 진짜 여자처럼 생겼어.”
선거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내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예쁜 여장남자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여장남자는 때론 진짜 여자보다 더 예쁘게 생긴 여장남자도 있더라고…
하지만 그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
그런 대단한 용기가 내겐 없다.
대신 츄리닝 안에 여성용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고 투표소에 갔다.
안에 여성용 속옷을 입었다는 사실.
그것 만으로도 마냥 흥분되었다.
걸음걸이도 예쁘게, 목소리도 예쁘게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그들, 여성 참관인들 앞을 유유히 지나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쁜 마음으로, 예쁜 자세로 투표하고 나왔다.
여장만 하면 이렇게 행동거지와 마음 자세도 예뻐집니다.
여장의 유일한 장점이지 싶네요.

여장남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