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소설 124] 당근에서 만난 여장 친구

당근마켓이 중고거래만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친구를 만나게도 해준다.
당근마켓 메뉴에 ‘우리 동네-같이해요.’라는 코너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에 “시디 친구 구합니다.”라고 썼다.
일반인들은 내가 말하는 시디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시디?
음악이 담겨있는 그 시디만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올린 글은 오직 여장남자만이 클릭할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화면에 알림 표시가 떠 있었다.
클릭해 보았다.
“저도 시디예요. 반가워요. 우리 연락하고 지내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 글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내가 당근에 올린 글은 이랬다.
저는 시디입니다. 24살이구요.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늘 여장을 하고 지낸답니다.
여장 경력이 좀 돼서 집에는 여자 옷이 아주 많아요.
저는 단독주택에 사는데 우리 집 지하실에 그것들을 보관한답니다.
만나서 함께 여장하실 분,
여장하고 같이 돌아다니실 분 찾아봅니다.
이 글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랬다.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님보다 세 살이 더 많아요.
저보다 시디 경력이 오래되신 것 같네요.
옷도 많으신 것 같고…
저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시디예요.
기회가 된다면 후배로서 배우고 싶네요.
사는 곳을 보니 00동이었다.
바로 옆 동네다.
그에게 답글을 써주었다.
글을 이제야 봤네요.
저는 00중학교 맞은 편에 있는 주택단지에 살아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올린 글이었는데 진짜 시디 분에게 연락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반갑네요.
제 이름은 유리예요. 우리 한 번 볼까요?
글을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유리님 정말 반가워요.
이름이 정말 예쁘시네요.
저는 희연이예요.
시디들은 이렇게 각자가 지은 여자 이름을 사용한다.
내일 저녁 00 공원 놀이터 어때요?
혹시 여장하고 나오실 건가요?
님은요?
할 수는 있지만, 내일은 안 될 것 같아요.
내일은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이라서요.
그럼 모레는 어떠세요?
모레는 가능해요.
저는 치마 입고 갈거예요.
저는 아마 청바지 입고 갈 거 같아요.
저도 청바지 좋아하는데…몸매가 날씬한가 봐요.
네. 조금.
아직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오랜 친구인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진짜 여자들처럼 말이다.

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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