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생활기록부에는 늘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로 기록되어 있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늘 혼자 다녔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고모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
크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합기도와 태권도를 배웠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여전히 당당하지 못하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여자로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여장에 관심이 생겼다.
시디가 되려고 그랬을까?
어느 날부터 여자 옷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예쁜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면 뒤를 따라가기도 했다.
옷 가게 앞에서는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여자 옷은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여자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이 예뻐 보였다.
여자 속옷, 액세서리, 화장품 등이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고,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전통시장 앞을 지나게 되었고, 또 우연히 속옷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는데, 그 속옷 가게는 또 우연히 그 늦은 시간에도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환한 조명 아래 진열된 수많은 여성용 속옷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가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여성용 팬티와 브래지어를 구매한다.
작은 꽃무늬들이 가득 수 놓인 분홍색 속옷이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아주머니 앞에 섰을 때 가슴이 왜 그리 떨리던지…
아주머니가 “선물할 거예요? 사이즈도 안 물어보고 사시네.”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입을 여성용 팬티와 브래지어 사이즈를 알리가 없었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네…엄마 생일 선물로 살 거예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가 조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웠다.
어쨌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 속옷을 사는 데 성공했다.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지만, 집에 가서 그 옷을 입을 생각을 하니 하늘을 나는 듯 기뻤다.
내리는 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 속옷을 입어보았다.
분홍색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고 서 있는 거울 속 내 모습.
너무나 예뻤다.
그렇게 내 시디 생활은 시작되었다.
2005년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