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여장소설 205] 남편이 여자 복장을 하고

내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집에 도착해서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집에 전혀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편이 벌써 잘 리가 없는데 집안 어디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느낌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자 남편이 외출하고 없다는 것을 즉시 알아챌 수 있었으며 부엌 상황을 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저녁 식사를 했는지 식탁 위에는 그릇과 반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옷을 벗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기겁하고 말았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온갖 여자 속옷들이 이불 위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모두 내가 처음 보는 여자 속옷들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바로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안방의 불을 끄고 화장실 맞은 편에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밖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두 명이었다.
남편의 목소리와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
‘친군가?’
나는 너무나 궁금해 문을 살짝 열고 문틈으로 현관문을 지켜보았다.
그런데…남자 둘이 아니었다.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
분명 남편의 목소리가 났는데 그곳에 남편은 없었다.
누군가 집을 잘 못 찾은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여자의 입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목소리였다.
세상에…남편이 여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긴 머리와 꽃무늬가 가득한 연두색 원피스를 남편이 입고 있었다.
남편은 이름 모를 남자와 손을 잡은 채 다정한 모습으로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어! 우리가 불을 켜 놓고 나갔었나?“ 남편의 목소리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서재의 책꽂이 뒤에 숨었다.
그리고 밖의 소리에 다시 귀 기울였다.
그들은 안방으로 갔다.
잠시 후 그들이 다시 나타났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의 물소리와 함께 그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유리.. 오늘 밤은 더 예뻐 보이는 군.“
유리? 그는 남편을 유리라 불렀다.
남편의 이름이 유리라니…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잉! 아저씨도..“
헉! 남편의 목소리였다.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어 가늘고 길게 애교를 뽑아내고 있었지만 남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정말이야. 오늘 유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아잉~ 몰라요. 몰라.”
“자. 이쪽으로 돌아서 봐.”
“아…앙 부끄러워요.”
“부끄럽긴, 처음도 아닌데.”
“그래도…”
“자, 그곳을 만져줄까?”
“아…아, 안돼요. 벌써 이러시면 안 돼요.”
“괜찮아, 나는 못 참겠어.“
”아잉 몰라 몰라.“
아…이게 진정 내 남편의 목소리란 말인가?
기가 막혔다.
남편이 왜 여장을…
그리고 저 낯선 남자와 함께 왜 내 집에서…
그리고 지금 욕실에서 애교 섞인 여자 목소리로 남편이 낯선 남자와 함께 샤워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두 손으로 내 귀를 막아버렸다.
전신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욕실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밖으로 나왔다.
집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세상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쯤 남편과 그놈은 침대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되어 뒹굴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니 하늘이 노래졌다.
이 일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너무도 기가 막혀 나는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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