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 카페에서의 내 닉네임은 예쁜 시디다.
화장한 내 얼굴이 왜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장이 취미인 남자, 크로스드레서다.
여장남자를 바보로는 사회적 시선은 대단히 곱지 않다.
여자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밤늦게 여자의 뒤를 몰래 따라가는 여장남자들의 뉴스가 많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여장남자라 하지 않고 크로스드레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직역하면 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이란 뜻인데, 줄여서 시디라 부른다.
나는 결혼할 나이가 조금 지났다.
친구 중에는 벌써 애가 초등학생인 경우도 있다.
너는 언제 결혼할 거냐는 친구들의 질문과 부모님의 걱정, 나도 안다.
하지만 결혼은 못 할 거 같다.
이유는 여장을 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도저히 끊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때론 여자처럼 생겼다는 말도 들었다.
성격이 완전 여자 같다고 했다.
짓궂은 친구들은 아예 대놓고 미스 정이라 불렀다.
그래서 자신의 성격을 적는 칸에는 언제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적었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그 때문에 어떤 모임에서건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사귀는 방법도 모른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야말로 외톨이의 삶을 살았다.
그런 내게 단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장이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여동생의 치마를 몰래 입어보았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말로는 표현 못할,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분홍색 꽃이 마구마구 피어나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여장이 시작되었다.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혼자 자취를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여장이 시작되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없이 스스로 여자 옷을 사 입고 화장을 하고 거울 속 여장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 했다.
인터넷을 통해 크로스드레서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몇 개의 시디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의 정모에 나간 적이 딱 한 번 있다.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겨우 나간 것이었다.
정모에 나가보니 시디들이 참 재밌게 놀고 있었다.
비록 몸은 남자지만 마음만은 여자인 그들은 끼가 넘쳤다.
파티의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물론 이것도 내 성격 탓이었다.
나처럼 조용한 성격의 시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날은 없었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만 있다가 쓸쓸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예쁘게 화장하고 조용히 앉아 여자들처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모습을 상상하고 간 것이었는데,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냥 집에서 여장하는 팔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론 시디 카페에 가지 않는다.
요즘엔 집을 벗어나 조금씩 외출도 하고 있다.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한다.
새벽 3시 정도에 나가 5시 정도에 들어오는 짧은 외출이다.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는 시간대지만 간혹 위험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두렵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걷는 즐거움이 더 크다.
‘예쁜’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 내 닉네임에 갖다 붙였다.
[예쁜 시디] 간단한 이름이지만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너무나 좋아해 눈에 보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부분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다.
머리끈, 귀걸이, 목걸이, 손거울 등.
거리를 지날 때 이런 것들과 마주치면 그 앞을 떠나지 못한다.
언젠가 공원에서 빨간색 구슬이 달린 헬로키티 머리끈 하나를 주운 적이 있다.
여자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것을 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길에 떨어진 머리끈 하나가 도대체 뭐라고, 내 가슴이 그토록 세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 역시 여자의 물건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공원 한 바퀴를 돌고 그 자리에 다시 와 보니 머리끈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것을 몰래 주워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하고 가발 쓰고 주운 머리끈을 이용해 머리를 묶었다.
하! 얼마나 예쁘던지.
머리끈의 주인이었을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은 여자아이가 되고 싶었다.
여자아이가 되고 싶어 어린이용 치마를 입고 어린이용 블라우스를 입고, 마치 여자아이가 된 것처럼 말하고 흉내 내고 행동했다.
그날은 종일 여자아이가 되어 소꿉놀이와 인형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도, 이제는 나이를 꽤 먹었는데도, 여자들의 예쁜 물건만 보면 괜스레 가슴이 뛰고 설렌다.
“너 왜 그렇게 사니?”
“너 왜 여장남자가 되었니?”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저 예쁜 것이 좋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들의 화장품, 예쁜 치마, 예쁜 액세서리 등등,
나는 분홍색으로 된 여자들의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참 좋다.
그것이 내가 여장에 빠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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