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소설 29] 여자가 되는 날

나는 지금 경기도의 한 모텔에 와 있다.
시디인 나,
주말이면 이렇게 여장 놀이를 하기 위해 모텔을 찾는다.
나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나는 지금 가슴이 깊이 파인 빨간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입술엔 빨간색 립스틱을 칠하고 침대 위에서 야릇한 포즈를 취하며 놀고 있다.
그리고 조금 전 팬티가 보이는 엉덩이 사진을 시디 카페에 올렸다.
글을 올린 지 5분 만에 댓글이 달렸다.
“너 지금 나 유혹하는 거니?”
러버인듯 싶다.
러버들은 초면인데도 우리 시디들을 우습게 안다.
반말은 기본이고 시디가 마치 제 장난감인 양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걸 싫어하는 시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네.”라고 공손하게 대답해주었다.
그가 “만나자!”라고 제의했다.
내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면서 처음 보는 나에게 반말이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장만 하면 이렇게 남자로부터 멸시를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무시 받는 게 기분 좋게 느껴질 때도 있다.
조금 더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는 계속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사이 시간은 12시가 되었고,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 도무지 잠은 오지 않고 그와의 만남만 상상되었다.
그의 집요한 요구에 나는 결국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는 금정에 있다고 했다.
30분이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내 가슴엔 두 개의 마음이 생겨났다.
만날까 말까.
내가 허락하면 그는 당장 이곳에 올 수 있다고 했다.
30분 후면 나의 첫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예쁘다.
오늘따라 화장도 잘 먹었다.
이런 모습이라면 어떤 남자도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어떻게 할까?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고,
“네. 만나요.”라고 썼다가 다시 지우기를 몇 번.
몸에서는 열이 나고 가슴은 콩닥거렸다.
그러기를 또 10여 분,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결심의 글을 썼다.
“네. 우리 만나요. 기다릴게요.”
이제부터 나는 여자.
요조숙녀처럼 앉아 그를 기다릴 것이다.
나의 첫 남자.
과연 어떤 사람일까?
오늘 밤이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여자가 되는 날이니까.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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