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소설 122] 한강변 여장남자

저는 여자입니다.
낮에는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저녁에는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밤 12시쯤 일이 끝납니다.
그날도 12시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려는데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어요.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어정쩡해서 강변 벤치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밤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요.)
처음에는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 것 같았는데 뭔가 느낌이 좀 이상해서…
여자의 직감이랄까?
자세히 보니 웬 남자가 교복 치마 비슷한 걸 입고 위에는 블라우스에 아래엔 스타킹에 운동화를 신고 머리는 뭔가 어색한…
(지금 생각해 보니 가발처럼 보임.)
그리고 분홍색 마스크.
처음 얼핏 봤을 때는 여자였는데,
여자랑 남자랑은 골격부터가 다르잖아요.
딱 봐도 남자인 거예요.
처음엔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 남자가 자꾸만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저도 그 남자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봐야 하니까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고…
저는 이제 강변 쪽에서 찻길로 올라가고 싶은데 그 남자가 올라가는 길목에서 자꾸 맴도니까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저 친구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렇게 15분 정도 지나니까 더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그 남자가 저랑 같은 박자로 걸어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조금 천천히 걸어가니까 그도 천천히 걷고,
내가 걸음을 조금 빨리하면 그도 빨리 걷고,
무서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가는데…
헉! 그 남자가 제게 다가오는 거예요.
다행히 그때 친구가 멀리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얼른 뛰어와서 저는 간신히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한 남자와 저와의 거리는 불과 5M.
제 친구는 조금 더 멀리 있었지만 서로가 보이는 정도의 거리.
저는 냅다 친구에게 뛰어갔고…
다행히 그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세상에!
그 남자가 버스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거예요.
뭐…솔직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남자랑 아무도 없는 강변에 둘만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하더라구요.
아무튼, 여자분들 조심하세요.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는 아니지만 지난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나 역시 지난날 여장을 하고 어두운 밤, 홀로 공원을 산책 했었고, 은연중 사람과 마주치기를 바랐었고, 그게 여자였으면 하는 기대를 품었고, 실제 여자를 만났을 때 여자의 주변을 맴돌곤 했었다.
그렇다고 일반 성범죄자들처럼 여자를 어떻게 해 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타인, 특히 여자에게 내 여장한 모습을 뽐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튼,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여장은 자유 취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도 줘서는 안 된다.
그 여장남자도 그냥 여자 앞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나갔으면 됐을 것을 괜히 여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니 여자도 겁을 먹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절제 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여장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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