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소설 151] 지하철에서 그의 향기

오늘도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집에 가면 들어야 하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생각하며…
서울의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에는 그야말로 지옥철이다.
많은 인파와 함께 자신의 영역을 사수하려는 인간들과 씨름해야 한다.
그래도 다른 스트레스보다는 낫다.
그날도 나는 그런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서로 밀고 밀리고를 반복하며 지하철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때…
이 냄새!
내 앞에 서 있던 한 남자의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상큼한 바다 냄새였다.
한여름 지하철 안의 찝찝한 공간을 잊게 해주는 그런 냄새였다.
바다 냄새와 시원한 바람의 냄새 그리고 해초류에서 나는 듯한 그런 냄새…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있는 냄새였다.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남자의 향기에 매료된 나는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머리를 깎은 지 보름 정도 되어 보이는 목덜미의 솜털과 중간 정도의 머리 길이에는 젤이 발라져, 잘 정돈되어 있었고 여자의 피부처럼 하얀 목덜미와 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물이 적당하게 빠진 청바지에 흰색 반소매 라운드 셔츠와 손에는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낮춰 지하철 창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려고 애를 썼다.
“어어어~ 왜 이렇게 밀어요?”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힘들었다.
잠시 후 그는 비좁은 틈을 이용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나의 눈엔,
아주 살짝 그의 옆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밀려 나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주 순식간에…
1호선 신도림역에서…
나는 그의 향기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의 모습을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며칠이 지나도 내 후각 세포에 각인된 그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기억은 그의 옷차림과 향기뿐…
나는 그의 향기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향기의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그 향기를 찾아야만 했다.
퇴근길에 제법 큰 향수 가게에 들렀다.
“향수 사시게요?”
“네…근데 이름을 잘 몰라서…”
“어떤 향인가요? 남자분이라 좀 강한 걸 찾으시나요? 이건 어떤가요? 남자들은 무스크 향을 많이 찾으세요. 좀 강한 향이거든요.”
나는 점원이 스틱에 묻혀주는 향수를 맡아 보았다.
“이건 너무 강한데요. 좀 부드럽고 시원한 향이었는데…”
“부드럽고 시원하다…그럼 이건 어떠세요? 여름에 잘 어울리는 향수예요.”
점원은 대나무 형태로 되어있는 용기의 향수를 내게 보여주었다.
“좀 비슷하긴 한데…좀… 뭐라고 해야 하나…바다 냄새 같은 게 나던데…”
“바다 냄새라..흠….시원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시원하기도 하고 좀 해초 냄새 같은 게 났어요.”
점원은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지으며 점포의 전면 유리에 진열되어 있던 향수를 들어 보였다.
“그럼 이거 말씀하시나 보다. 이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신상품이에요.”
점원의 손에는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파란색 액체가 담겨있는 향수병이 들려 있었다.
“자, 한 번 맡아보세요.”
그리고 스틱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순간 내 머리에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내 앞에 서 있었던 그 매력적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모습과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마치 실제 영상을 보는 것처럼 그려졌다.
“아! 이거 맞아요. 이 향기예요. 얼마죠?”
“아.. 이거 찾으신 거였구나. 그건 30ml인데 43,000원이고, 50ml짜리가 있는데 그건 59,000원이에요. 아무래도 큰 걸 쓰시는 게 경제적일 거예요.”
“그래요? 그럼 50ml로 주세요.”
나는 그 향수를 연신 코에 대며 향기를 음미했다.
지하철의 그를 생각하면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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