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드레서

[크로스드레서소설 185] 수영복 입고 패션쇼

몇 년 전,
아는 사람 몇 명과 함께 해운대에 간 적이 있다.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중에는 내가 짝사랑하는 여자애도 있었다.
바다를 감상하고 해변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백사장 한가운데를 걸어가는데 떠들썩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가 보았더니 무대 위에서 어떤 패션쇼를 하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쁜 아가씨들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채 무대 위를 멋지게 걸어 다녔다.
크로스드레서인 나, 그들의 모습에 그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예쁜 얼굴이나 날씬한 몸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입고 있는 수영복이 너무나 예뻐서였다.
바로 옆에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도 그런 생각에 빠졌다.
나도 저렇게 수영복을 입고 저 여자들처럼 해변가를 거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갑자기 여장 생각이 간절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오는 내내 여장 욕구는 멈춰지지 않았다.
빨기 가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은 채워졌다.
좋아하는 여자애에 대한 생각은 뒤로 밀렸다.
그런 내가 한심했지만 나는 마음속 여장 욕구를 털어낼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고 재밌는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다.
헤어질 때의 아쉬움도 거의 없었다.
그저 빨리 집에 가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패션쇼 모델을 재현해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동네에 도착해 곧장 수영복 가게로 갔다.
휴가철이어서인지 수영복매장은 갖가지 모양의 수영복들을 매장 앞에 진열해 놓고 있었다.
남자가 어떻게 여자 수영복을…
제정신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수영복에 미쳐 있었다.
하얀 꽃무늬가 프린트된 핑크색 비키니 수영복을 골라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가 조금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주머니가 내게 사이즈를 물었다.
사이즈?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수영복의 사이즈를 어떻게 말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 비키니 수영복을 처음 사보는 것이니 당연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아주머니는 “누가 입을 건데요.”라고 물었다.
차마 이 여자 수영복을 손에 들고 “제가 입을 거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 친구요. 제 키와 비슷해요.”라고 말한 후에야 나는 겨우 치수에 맞는 수영복을 구매할 수 있었다.
수영복 가게에 있는 내내 내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가게를 나올 때는 등 뒤에서 아주머니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냥 행복했다.
집에 오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보는 것이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전율,
해운대에서 보았던 수영복 모델들의 워킹 모습을 떠올리며 거실을 패션쇼 하듯 걸어 다녔다.
관객들을 향해 손도 흔들어주었다.
잘 들어갔냐는 여자 친구의 문자에 답을 줄 시간도 없이 수영복 놀이에 빠져있었다.
여장의 마무리는 수영복을 입은 채 샤워를 했고 수영복을 입은 채 자위를 했고 수영복 안에 사정을 했다.
그렇게 여장의 갈증을 해소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짝사랑 그녀가 보내 준 문자 생각이 났고 잘 들어왔다는 답장을 보내줬다.
여장에 미치면 이렇다.
좋아하는 여자도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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