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 선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적성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걸러 찾아오는 여장의 욕구가 직업 선택마저도 어렵게 만들었다.
자유롭게 여장하면서 여자처럼 살 수 있는 그런 직업은 없을까?
당시의 내 좁은 소견으로는 미용사가 딱인데 소심한 성격 탓에 여자들 사이에 끼어 미용 기술을 배우는 게 겁이 났다.
여장은 나쁜 짓이라는 생각에 차라리 여장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여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당시 인터넷의 시디 카페의 존재도 모르던 때라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고 괴로워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성전환 수술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접었다가도 또 어떤 계기가 되면 다시 성전환 수술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날이 매번 반복 되었다.
성전환에 관한 여러 글을 읽으며 깨달은 것이 수술이라는 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고 돈도 많이 들고 성전환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성전환은 포기했다.
수술은 포기했지만,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증과 싸워야 했다.
말로만 포기했지 뇌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잡아 준 건 어머니였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여장 극복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을 채 못 버티고 다시 여장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때는 그렇게 여장 욕구가 강렬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이 30쯤에 한 카페 대화방에서 트랜스젠더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게 여장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종류의 옷을 좋아하는지 등에 대해 물었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여장을 끊은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니 여장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시디냐며 대화방을 나가 버렸다.
내가 이것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 1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착각에 빠뜨리게 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한 예쁜 여성을 보게 되었는데 내 시선은 온통 그 여성분이 입고 있던 옷에만 쏠렸다.
얼마나 집요하게 보았는지, 그 여성분은 내가 보내는 시선에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여성분의 옷차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며칠 후에 다시 여장을 재개하고 말았다.
1년 간의 시간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여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
석 달 전 나의 어머니는 결국 며느리를 못 보고 돌아가셨다.
나는 불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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